Space Oddity

 

언어로서의 사물을 전제로 한 이 작업은 대상이 투명한 존재성, 현재성에서 점차 불투명한 타자성, 유령성으로 옮겨가는 알레고리적 과정 그 자체에 대한 사유를 진행한다. 이미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생산품, 소위 ‘레디 메이드’라 불리는 사물들이 그 “대상적 재료”가 된다. 그것이 대상적 재료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결국 대상과 주체 사이의 애매한 설정의 문제로 이어진다.

어쨌든, 그 사물들은 고체상태의 글루 스틱들을 일렉트릭 글루건에 장착시켜 전기의 힘으로 인한 가열의 효과로 액상의 글루가 흘러 나오게 하는 기계적 공정에 의해 뒤덮혀진다. 액상의 선들로 흘러나오는 글루는 직물 의 날실과 올실처럼 사물들의 표면위를 가로지르며 횡단하는 것을 수차례 반복한다. 뜨거운 액상의 선들은 결국 차가운 고체 상태로 사물의 표면에서 응고된다.

글루 건을 쥐고 있는 것은 나의 손이지만, 그러한 나의 손이 따라가고 있는 것은 사물들의 표면, 그 형태들의 표면이다. 글루로 사물들의 표면을 덮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형과 조합이 주체의 능동적 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 사물들의 형태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움직임이 지배적이며, 그 능동적 행위의 출처 역시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서로 다른 각자의 의미와 역사를 갖고 있었던 기존의 사물들에 글루라는 매개를 통해 개입(‘파레르곤’의 문제)하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물 자체에 대한 욕구불만’? 사물에 대한 인간적 투사행위?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의 손?

이미 인공적인 사물들에 또다시 인공적인 매체를 사용하여 그것들을 뒤덮는 행위,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을 거쳐 더욱 인공화가 가중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미 하나의 의미와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물들의 끝없이 반복되고 지연되는 의미들의 불안정성을 따라가는 작업, 이러한 작업에서 주체(작가)는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주체와 객체의 사라짐? 작가는 사라진다. 사물들도 사라진다. 글루의 두터운 층 아래로…

글루는 “매개”가 아닌 것이 되어간다. 글루는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 되어간다. 사물들에 기생하는 바이러스 혹은 폭력… 혹은 ‘저 위험천만한 대리보충’? 하지만 실제로 사라지는 것도 상실되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은 허구이고 환상일뿐이다. 일탈의 허구적 대리보충성? 대리보충적 허구성? 과잉적, 이질적 질료로서의 글루, 또한 동시에 과잉적 혹은 잉여적, 이질적 에너지로서의 작가의 움직임, 메타 언어 혹은 메타 픽션으로서의 반성적 재표기(re-mark)…?

어떤 종류의 곤충들은 자신의 체액으로 외부 세계를 뒤덮으면서 자신의 바깥에 있는 존재들을 감지하고 인식한다고 한다. 이 작업에서 곤충이 되는 것은 나이지 사물들이 아니다. 사물들은 오히려 “인간적”이 된다. 하지만 곤충이 된 나는 사물에 대해 무엇을 인식하는가? 그것들의 현전? 지금 여기에 있음?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그것들의 현전은 무엇인가? 그것들의 의미는 현재 여기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과거의 퇴적물인가, 아니면 도래할 어떤 것인가?

역설적인 의미에서 이 작업은 일종의 고고학적 작업이다. 고고학적 발굴의 과정적 역행, 파헤침으로써가 아닌 파묻음으로써 사물들에 접근하려는 일종의 역설적 탐구과정이다. 사물들의 내밀성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을 어떠한 막, ‘베일’로서 의 글루의 효과, 블랑쇼적 의미에서의 ‘밤’과 ‘죽음’을 가장하는 것으로서의 글루의 물질적 반투명성과 그 유령성… ‘언제나 이미 유령인 사물들’을 ‘표시(mark)’하기 위해 덧입혀진 ‘유령적’ 의복(costume)으로서의 글루? 혹은 일종의 메타언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의 글루의 효과? 혹은 ‘대리보충’으로서의 글루? 하지만 무엇을 대리보충하는가? 사물들에 대리보충이 필요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모든 사물은 언제나 이미 죽음을 내포한다. 죽음으로써만 연명되는 삶… 정체성, 동일성이란 없다. 정체화, 동일화만이 있을뿐… 대체가능한 유일한 사물은 대체불가능하다… 의미와 지시대상의 지연관계… 비현전의 잉여, 대리보충… 자기 자신이 되려는 모든 유일성은 근본적으로 불순해야만 하고 반복 가능, 대체 가능해야만 한다… 대체 불가능한 것은 대체될 수 있어야 한다.’

작가 노트 2019

Artist's Statement

 

       전체적인 작업은 오브젝트 만들기와 드로잉,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사물들이 언어와 관념의 폭력속에서도 완강하게 지켜내는 물질성과 존재성, 그로 인해 생성돠는 또다른 가능성으로서의 의미 혹은 무의미에 대한 실험이므로 결국 같은 목적성을 갖는다. 오브젝트가 공간적으로 응집, 응고된 드로잉이라면, 드로잉은 평면적으로 펼쳐진, 흩어진 오브젝트들의 이미지인것이다. 마지막 설치작업에서 오브젝트와 드로잉 작업들이 함께 전시되면서 서로의 대화와 교차점을 찾는다.

       오브젝트 만들기: 이미 만들어진, 소위 레디메이드라 불리는 사물들을 준비한다. 주로 그 형상이 강한 상징성이 있거나 뚜렷한 목적성이 있는 성향이 있으나 선택에 특별한 기준은 없다. 그 사물들의 표면에 핫 글루(hot glue)를 덮는다. 덮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물들의 변형과 조합은 드로잉에서의 겹침과 같은 의도이다.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사물들의 대화와 충돌, 융합과 공존 혹은 분리이다. 반면에 사물들 고유 형태의 기본틀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내 앞에 있는 사물이 항상 나보다 강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글루 건(glue gun)에 글루 스틱(glue stick)들을 끼워넣으면서 흘러나오는 가열된 액상의 선들로 사물들을 덮는 과정은 그 표면위에 드로잉을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또한 글루의 반투명성은 그 행위자가 마치 어떤 곤충이 되어 자신의 체액으로 외부세계를 뒤덮는 것을 연상시키며, 자신의 바깥에 있는 존재들을 알기위해 오히려 그것들을 덮어씌우면서 체험하는 역설적인 이 작업과 동행한다. 이미 인공적인 사물들에 또다시 인공적인 매체를 사용하고 작가의 몸과 정신을 거쳐 더욱 인공화가 가중되는 과정들속에서, 이미 한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고 모든 이들의 공집합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물들의 물질성 혹은 비물질성, 소통과 상실을 탐구하는 것이 이 작업이다.

       드로잉작업: 트레이싱지(tracing paper)를 이용해 서로다른 이미지들과 텍스트들을 겹치는 단순한 과정이다. 이들은 이미 다양한 역사와 문화, 시대, 출처와 작가들을, 각각의 독특한 목소리들을 가지고 있다. 재활용과 흡사한 이 과정은 서로 다른 이미지들과 텍스트들이 대화하고 공존하면서 관계를 맺는 공간을 연다. 그들의 윤곽과 흔적을 따라가는 트레이싱은 이해가 아니다. 그것은 ‘놀라운 무지’에 가깝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의 겹침으로서의 트레이싱 드로잉은 펼쳐진 오브젝트로서의 또다른 물질성을 갖는다. 트레이싱지와 글루의 반투명성은 이 두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작업은 다른 형식을 가진 같은 작업이다. 이미 만들어진 사물과 이미지들, 텍스트들 그 본래의 물질성과 정신성이 어떻게 변성의 과정을 겪는가에 대한 작가의 현상학적 실험속에서 상실되고 변형되고 생성되는 또다른 이미지들을 발견하고 다시 만들어 간다. 시각언어가 또다른 언어라면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의 문학에 대한 사색이 이 작업에 큰 공명을 준다. ‘문학은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며, 세계 그 자체도 아니다. 세계가 존재하기 이전 사물들의 현존, 세계가 사라진 이후 사물들의 보존,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을때 남는 완강함,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때 나타나는 놀라움.’

2017년

 

 

       In the beginning, I was trying to make something straight to my heart, something that I truly believe in. Working from the inside, I have to translate the invisible into the visible. I wanted the whole installation – silkscreen prints, projected images and glued objects -of the room called "The Cell" to be one big drawing in the space, one worlds, one life of a human being, including daily life, physical and mental, the world, both inner and outer, and even, after life, when physically gone but, the spirit remains. All symbols in the space have a story about someone living in the cell as a mere existence. About the Cell, it can be read both religiously and secularly. How can it be separated? That's my thought

       Decisions I made for the installation, follow the story that tries not to be distracted by the visual aspects. It may sound like an oxymoron, but that's the way I do my work. I don't know what it will become visually: I'm just trying to hold onto what it will be as the whole. Not so satisfied, embarrassed, I wanted to change many things, but realized that I didn't know what to do about it. If I had changed something, the story would have been changed. I just did what I should have done.

       The objects are covered with hot glue by using a glue gun; they are lines or drawing folded, condensed and compressed, both physically and mentally. I had a strong need to make something more physically direct, something tangible, just the thing and me-face to face and, nothing in-between.

       Why covering the objects?  Covering is discovering, burying is digging, in the way of excavation is. 

       Why glue? Obviously I'm obsessed with hot glue. For some reason that I can say and, for many more reasons that I don't know. I'm fascinated by the transformation of a glue stick-from the solid to liquid, then solid again, but in a different form, and the in-between quality -between the transparent and the opaque, which reminds me of something that is essential about being the human. Also, I feel like some kind of bug, making something with his own saliva or 'body liquid' or blood and, when I'm in the process, but who can explain his own obsession reasonably? It might be said that the whole installation is about my obsessive belief about something between the glue and the Cell.

       All symbols in the space have a story, it’s somewhat personal. I imagined someone living in the cell physically and mentally, in his or her daily life,  mere existence as a human being, and that someone might be everybody, or someone specific, someone very important to me but totally unknown to me. 

2010